저는 두 아이에게 서로 다른 것을 주었습니다

작성일: 2026년 7월 13일 · 검토: 현직 미국 대학 에세이 컨설턴트

미국 대학 입시가 시작되면 부모님들 사이에 이런 말이 오갑니다.

“옆집 아이는 벌써 연구를 시작했다더라.” “같은 학년인데 AP를 하나 더 듣는대.” “봉사활동 시간이 벌써 300시간이 넘는다더라.”

처음에는 그저 정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정보는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기준이 됩니다.

“우리 아이는 괜찮을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남의 집 아이와의 비교가 아니라, 제가 훨씬 더 오래, 훨씬 더 깊이 했던 비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제 두 아이를 서로 비교했습니다.

두 아이는 정반대였습니다

큰아들은 도전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아이였습니다. 무언가를 정하면 끝을 봐야 했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눈이 빛났습니다.

다만 그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늘 뒤로 밀렸습니다. 나쁜 아이여서가 아니라, 그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목표가 항상 먼저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딸은 반대였습니다.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고, 누가 불편해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다만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것, 칭찬받을 수 있는 것에 머물렀습니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에는 아예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둘이 반씩 나눠 가졌으면 좋겠다고.

아들의 도전 정신을 딸이 조금만 가졌더라면. 딸의 따뜻함을 아들이 조금만 가졌더라면.

그래서 저는 서로 다른 교육을 했습니다

아들에게는 밀어붙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시켰고, 선행 학습을 시켰습니다. 목표를 정해 주고, 그것을 향해 달리게 했습니다. 잘하면 더 어려운 것을 주었습니다. 칭찬은 아꼈습니다.

딸에게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그 아이에게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사랑해.”

그것이 제 교육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그때 제가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마다 다르니 다르게 키워야 한다고요.

그런데 어느 날, 테니스 코트에서

딸이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주니어 경기에는 심판이 없습니다. 선을 판정하는 사람은 선수 자신뿐입니다. 자기 코트에 떨어진 공이 인인지 아웃인지, 본인이 말해야 합니다.

그날 딸은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넘긴 공이 베이스라인을 훌쩍 넘어갔습니다. 명백한 아웃이었습니다. 선과 공 자국 사이에 손바닥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여백이 있었습니다. 상대 아이조차 라켓을 내리고 실점을 예감한 표정이었습니다.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 자국을 뻔히 보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다음 포인트로 넘어갔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상대 아이가 물었습니다.

“아까 그 공, 아웃 아니었어?”

딸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들어왔어.”

저는 야단칠 수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호통치고 싶었습니다. 그 공은 명백한 아웃이었다고. 네가 지켜야 할 것은 상대의 기분이 아니라 너 자신의 정직함이라고.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든 것이 저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십 년 넘게 “사랑해”라고만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저 괜찮다고, 너는 그대로 좋다고만 했습니다.

그 사랑이 그 아이에게 선(線)을 긋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법. 불편해도 진실을 말하는 법. 누군가 기분 나빠할 수 있어도 옳은 것을 옳다고 하는 법.

저는 그걸 한 번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는 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코트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밤새 잠들지 못했습니다.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은 반대 방향으로 반쪽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밀어붙인 덕분에 어려운 것을 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쉬운 것을 놓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목표를 향해 달릴 줄은 알았지만, 옆 사람의 속도에 맞추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가 준 것이 그 아이의 강점이 되었고, 제가 주지 않은 것이 그 아이의 약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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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알았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두 아이를 비교했습니다. 아들에게 없는 것을 딸에게서 보았고, 딸에게 없는 것을 아들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없는 것들은, 제가 주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아들이 배려를 배우지 못한 것은 제가 목표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딸이 선을 긋지 못한 것은 제가 사랑만 주었기 때문입니다.

비교의 대상은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저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께

입시가 시작되면 우리 아이에게 없는 것이 자꾸 보입니다. 남의 집 아이가 가진 것, 형제가 가진 것, 이 아이만 못 가진 것.

그때 이 질문을 한 번 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 없는 것을, 나는 이 아이에게 준 적이 있었나?”

저는 아들에게 배려를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딸에게 도전을 요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 놓고 그것이 없다고 아쉬워했습니다.

물론 부모가 모든 것을 줄 수는 없습니다. 저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다만 아이에게 없는 것을 세기 전에, 내가 무엇을 주고 무엇을 주지 않았는지를 먼저 돌아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이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마치며

두 아이는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아들은 여전히 목표를 향해 달리고, 딸은 여전히 따뜻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둘이 반씩 나눠 가졌으면” 하고 바라지 않습니다.

그건 두 사람이 아니라, 제가 상상한 완벽한 아이 한 명이었으니까요.

세상에 그런 아이는 없습니다. 대학도 그런 학생을 찾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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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지금 아이에게 없는 것이 자꾸 눈에 들어오신다면, 한 번만 물어봐 주십시오.

“그것을, 나는 이 아이에게 가르친 적이 있었나?”

저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데 십 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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